기다림이 있는 예천, 그 속으로

삼강 나루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글. 전미경

강은 역사다. 문명의 발상지가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음은, 인간은 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강을 따라 국경을 나누고 문화를 이으며 소통해 오는 동안 무한의 성장도 이뤄냈다. 강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고 시장이 조성되면서 다양한 생필품 거래가 이루어졌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삼강 나루터는 상업의 요충지로서 큰 배는 물류 수송을, 작은 배는 사람을 싣는 임무를 담당했다. 특히 한양과 지방을 잇는 물류 교류의 거점으로서 보부상과 사공들에겐 고단한 삶, 한 박자 쉬어갈 장소이기도 했다.

삼강 나루터는 주흘산맥과 학가산맥, 팔공산맥 끝자락이 만나면서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수륙 교통의 요충지로서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으로 흐르는 물길이다. 푸른 생명을 품은 삼강은 발원지에서 힘찬 걸음 알리며 낙동강을 향해 쉼 없이 흐름을 이어왔다. 합류는 화합이며 진행이다. 서로 다르지만 어우러져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전혀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데 막상 어우러지면 태초부터 하나인 양 어색함 없는 조화를 이룬다. 각자 흘러온 물길은 달랐어도 합류했으니 다시 한 길만을 고집한다. 자연의 순리는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때가 되면 길을 열고 맞이하기를 여러 차례, 제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때론 굽이치는 물살 가르며 말 못 할 사연도 함께 실어 날랐다. 골 깊은 태백과 소백이 지류를 이뤘으니 삼강 나루터야말로 가쁜 숨 한번 제대로 내어 쉴, 생명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모진 세월을 견딘 흔적이 강의 등줄기에 검푸른 문양을 새기며 거칠게 혹은 순하게 그 흐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황포돛배가 모든 사연을 알고 있는 듯 둔치에서 삼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린 바람 가르며 강과 혼연일체 되어 자존심의 높이만큼 펄럭였을 돛이다. 강의 역사를 써 내려간 흔적을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기쁨이며 보람이다. 이제 빈 배로 돌아와 침묵하는 모습을 보니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인 양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역할이 있기 마련, 어느 것 하나 그 쓰임이 귀하지 않은 게 없다. 바람 한 줌, 햇살 한 조각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있을 테다. 삼강 나루터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인부의 품삯을 정할 때 들돌을 들 수 있으면 두 배의 값이 매겨졌다고 하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아이러니다. 수고한 손길이 대접받는 곳이라면 보람은 더 컸을 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어디선가 “어디어 어기야 어기여차” 자진모리장단의 노동요가 들리는 듯 숙연해진다. 사공이 젓는 노가 뭍사람들에겐 꿈을 향한 기대의 걸음이었을 터, 삼강 나루터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들로 살아온 뱃사공의 지난한 삶을 들여다보듯 애잔함이 녹아든다. 황토물 곱게 밴 옥양목 돛을 달고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며 뭍사람들의 꿈을 수없이 키워내던 나룻배가 아니던가. 주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생면부지의 사람과 막걸리 한 잔 기울일 만큼 정담이 오가던 그때,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며 위로받던 자리,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던 삼강 나루터가 바로 그런 곳이다.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던 나루터에 축제가 한창이다. 삼강주막, 보부상문화체험촌, 삼강나루캠핑장, 생태공원, 강문화전시관을 낀 삼강문화단지는 그야말로 축제장답게 인파로 북적인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볼 수 없을 만큼 삼강을 노래하고 있다. 한때 해안과 내륙을 잇는 거점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을 삼강 나루터는 물리적 가치를 넘어 역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 곳이다. 특히 내륙교통의 중요한 수단이었던 황포돛배는 우리나라의 강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한양과 지방의 물자 및 인구 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나루터 주변은 물류의 집결지였다. 한양의 귀한 물품과 지방의 특산물 교류가 왕성하던 곳으로, 보부상들의 움직임 또한 분주했으리라 짐작된다. 강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시장 또한 크게 번성하였다. 소금과 해산물을 실은 나룻배는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삼강 나루터에 드나들었다. 특히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은 이곳 나루터에 내려 육지를 통해 각지로 퍼트려졌다. 마치 장이 선 당시의 풍경을 보는 양, 짐 실린 나룻배의 일렁임이 그려진다. 

시간이 갈수록 축제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마음도 덩달아 축제장이 된다. 삼강주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먹거리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현대판 주모의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진다. 보부상 숙소와 뱃사공 숙소는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으로 만원이다. 걸판진 흥이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이, 주 무대를 중심으로 함성과 박수갈채가 이어진다.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니 관광객의 만족은 배가 되는 듯하다. 삼강주막 나루터 축제장을 찾지 않았다면 어찌 이 멋진 광경을 접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 저잣거리를 거니는 느낌이다. 시공을 아우르는 광장,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흥에 취한 모습이다. 곳곳에서 공연과 체험이 이어지니 즐기는 인파의 표정 속에 행복이 넘실댄다. 주객이 따로 있지 않고 이날만큼은 모두가 주인공이다. 맛과 멋, 흥이 최고조에 달하니 덩달아 어깨춤도 곁들여진다.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삼강주막은 축제를 이끄는 중심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정갈한 주막 한 채, 그 안에 담긴 삶의 애환과 여정이 막힘없이 술술 풀려나온다. 남루했을 부엌살림이지만 이곳엔 계산되지 않은 사람들의 정이 시간을 건너와 함께 부려져 있다. 손님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자 분주했을 주모의 모습도 그려진다. 좁은 부엌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나 있는 문은 소통을 위한 통로였다. ‘주모’하고 부르면 뒤돌아가지 않고도 술상이 바로 들어갈 수 있게, 어디든 문이 벌컥벌컥 열릴 수 있는 실용성 있는 구조다. 단출하지만 든든한 소반을 앞에 두고 고단한 몸 잠시 내려놓으며 허기를 달랬을 묵객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주린 배를 채우고 쏟아지는 잠을 청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간혹 고된 하루가 공감과 이해로 다가왔다면 더없는 위로였을테다.   

수령 500년 회화나무가 강바람을 뒤로 한 채 주막을 지키고 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듯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안쓰러움만큼이나 외로움의 무게다. 그 외로움을 견딘 노력이 가지와 잎을 키워냈다. 우람한 둥치에 걸맞게 풍성한 그늘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을 위로했을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성경 구절처럼 고목은 자신을 찾는 이들이 생의 등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늘에서 작은 위안이라도 받길 바랐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지켜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평화를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침묵하는 속내, 그 깊고 넓은 나무의 마음이 조금은 읽히는 듯하다.

조선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주막은 온기로 가득하다. 빗장 열린 부엌에서 그녀의 손끝을 따라가 본다. 흙벽에 칼로 길게 혹은 짧게 그어진 빗금, 외상장부 엄대다. 엄대는 물건을 외상으로 거래할 때 대금의 표시로 길고 짧은 금을 새겼던 막대기이다. 글도 숫자도 모르던 할머니가 손님과 나눴던 지혜의 소통 방법이다. 비록 할머니가 글줄은 몰랐어도 비상한 머리 덕에 외상값을 바로 장부에 달 수 있었다.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 긴 금은 막걸리 한 되. 시간을 건너온 지금도 그 기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할머니만이 아셨던 빗살 외상장부였던 것이다. 그 빗금은 삼강에 모여든 뱃사공이, 장돌뱅이가, 선비가 허기와 갈증을 달랜 희로애락의 흔적이기도 하다. 

삼강 나루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인생사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 절로 실감 난다. 잘났다고 내세울 일도, 못났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변을 살펴 마음을 나누고, 선의를 베풀면 될 일이다. 오늘의 양지가 내일은 음지가 될 수 있고, 내일의 음지가 모레는 양지가 될 수도 있다. 음양은 돌고 도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하다. 계절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순환하듯 세상사 영원불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골골에서 모여든 사연을 품고 있는 삼강 나루터, 마디마디 써 내려간 강의 역사에 오늘의 기록도 한 줄 얹는다.

지금은 주모도 사공도 보부상도 모두 사라졌지만, 그들의 눈물과 땀으로 얼룩졌던 기록만큼은 삼강과 함께 역사의 배를 건너고 있다. 어디어 어기야 어기여차, 사공의 구성진 뱃노래를 소환하자 나루터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삼강으로 모여든 물길만큼이나 깊고 긴 사연들, 아직 기록되지 않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훠이훠이 노를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