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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거니는 상주
Date : 2023-11-03
Name : 장 선녀 File : 202311030805279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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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황구하


 상주 낙동 물량리 암각화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올해 꽃소식이 여느 때보다 빠르다고 하더니 들녘엔 벌써 매화 꽃잎이 하르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한참을 달려 암각화 근방 평평한 공터에 차를 놓고 김상호, 민경호 선생과 함께 구불구불 구릉길을 걸었습니다. 물량리 산131번지, 해발 100미터도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사람들 발길이 드문 곳이라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나뭇잎과 달라붙는 도깨비바늘이 걸음을 더디게 했지요.

 

낙동강이 굽이져 내려다보이는 좁은 길은 좀 위태로웠습니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곧장 강물로 굴러 떨어질 듯했습니다. 산비탈에는 둥근 돌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는데요. 길에는 타조알, 달걀처럼 생긴 돌들이 흩어져 뒹굴었습니다. 원래 강이었는데 융기되어 만들어졌다는 낙동리의 나각산처럼 아득히 먼 옛날 어쩌면 이곳도 강물이 출렁대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산자락 한쪽에 수직으로 평탄하게 펼쳐진 암벽에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요. 이 유적을 처음 본 건 작년 늦가을이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김성석 화가는 “우리 대선배님 그림이 여기 있네. 이게 상주 미술사 가장 오래된 그림이겠죠?” 하며 환호했지요.

 

암각화 이야기를 간간이 전해 들었지만 직접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민경호 선생 역시 “상주 향토 문화 관련해서 어지간한 곳은 다 가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여기는 처음이네.” 했습니다. 오랫동안 상주지역 곳곳 바위를 찾아다니며 『경북 상주지역의 바위글과 그림』, 『경북 상주지역의 바위구멍 유적』 등의 책을 펴낸 데 이어 최근 「상주 낙동 물량리 암각화 상세 형상과 분석」(상주문화원 강연자료, 2022년)을 정리하신 김상호 선생 덕분이지요.

 

 

암벽에 새겨진 형상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위 중간 부분에 빗물이 흐르듯 세로로 균열이 나 있는데요. 오른쪽 면에 패인 점과 선을 손으로 짚어가며 들여다보니 언뜻 남자의 형상이 먼저 보였습니다. 바위 남자의 커다란 두 눈이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아서 움찔했습니다. 큰 귀는 천 년 전의 물소리, 바람 소리를 다 담고 있을 듯했습니다. 그 큰 귀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쪽 팔은 긴 손가락을 편 채 옆으로 쭈욱 펼치고 있었습니다. 몸통은 없고 팔에 이어서 다리가 선으로 새겨져 있는데요. 문득 중국 윈난성[雲南省] 나시족[納西族]이 천 년 전부터 사용해온 동파문자(東巴文字)가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윈난성에 갔을 때 매료되어 동파문자가 새겨진 나무 장식품을 품어오기도 했는데요. 윈난성 어느 마을에서는 동파문자 벽화와 간판도 간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변제사(水邊祭祀)의 신상(神像)’으로 여기는 물량리 암각화의 형상 역시 다양한 눈으로 해석한다면 역사 유적으로만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로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바위 왼쪽 면에는 커다란 눈 세 개가 그려진 얼굴 형상이 보입니다. 얼굴에서 바로 두 개의 여덟 팔(八) 자 모양의 선이 좌우로 새겨져 있습니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여자 형상으로 보는데 김상호 선생은 제사장이 사용하는 무구(巫具)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매 넓은 옷이 나풀거리는 것도 같고 무구에 달린 리본 같기도 합니다.

 

캔버스 같은 평면의 암벽 아래로 수평으로 된 바위가 잇닿아 있는데요. 의례의 제물을 차리는 제단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물량리 암각화는 “비[雨]를 기원하는 기우제 표현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농경사회에서 물만큼 간절한 게 있을까요.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존재의 기원입니다. 그러니 요즘처럼 가뭄이 길면 얼마나 애가 타겠는지요.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바위를 쪼아 신상을 새기고 의례를 치렀겠지요. 

    

물살이 빠져나간 곳은 

어디든 길이 되었지만

물고기 한 마리 

돌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제 몸 부비며 길을 낸다 

우주가 가볍게 몸 틀고 있다 

-졸시, 「석림(石林)에서 길을 잃다」 전문

 

암벽에 새겨진 기도의 무늬처럼 바위 속에 물이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민속학자 M. 엘리아데가 “재생에 대한 신화들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수생적(水生的) 요소는 지극한 풍요로움의 상징인, 또는 현명함의 상징인 물고기”라고 했는데요. “돌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물고기 한 마리”가 암각화에 저장된 오랜 기도와 주술의 물결에 “제 몸 부비며 길을” 내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바위 앞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 길 아닌 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비단 의례를 위해 온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강과 산과 바위와 나무, 온갖 생명의 통로인 이곳은 상처 입은 심연의 치유처, 삶의 기도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는 촛불을 켜고 모스부호처럼 바위를 두드리며 하늘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간절한 바람을 타전했는지도 모릅니다.

 

 

눈물처럼, 빗물처럼 패인 암각화 주변 산봉우리와 사람의 얼굴 형상 바위를 더 둘러보면서 김상호 선생은 여러 가지 걱정을 피력했습니다. “나무를 땔감용으로 벌채한 시기가 한 세대를 넘으면서 수목이 점차 자라 뿌리가 그 기반을 위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부엽토가 퇴적되어 암면의 그림 부분에 지의류가 고착되면서 점차 보존 환경이 악화하는 등 환경이 나빠”진다고 했지요. 오늘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긴 가뭄과 폭우, 폭염, 한파, 태풍, 산불 등 심각한 이상 기후 환경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왔던 길을 천천히 돌아 나오는 길, 멀리 보이는 하늘에 커다란 연기 기둥이 솟구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어디 산불이 난 것 같은데…” 할 때 상주 외남면 흔평리 야산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문자가 울렸습니다. 봄바람이 어찌나 야단스러운지 걱정이 커졌습니다. 암각화에 새겨진 신상을 부적처럼 그려보며 부디 큰 피해가 없기를, 얼른 비가 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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